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루오야 마사토 (문단 편집) == 사망 이후 == 후루오야 마사토는 [[소년탐정 김전일/드라마|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켄모치 이사무]]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예능 및 드라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자살하여 2002년 출연한 [[모닝구 무스메]] 서스펜스 드라마 스페셜 : '얼룩고양이 홈즈의 범죄학강좌, 내가 녀석이고 녀석이 나'가 그의 유작이다. 자살 이유는 아내 카누마 에리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1980년대 후반 아이돌이 주연의 드라마나 영화가 주류가 되었고 1990년에 들어서면서 거품경제를 배경으로 트렌디 드라마가 주류로 되는 가운데도 남편인 후루오야는 어디까지나 강경하고 진지한 역할만 고집하여 일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배우로 활동하는 폭이 줄어 들었다. 게다가 경력이 올라가면서 개런티도 올라 후루오야를 쓰는 쪽에서도 남편을 기피하게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이 줄자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경우도 많아졌고, 집에 틀어박혀 낮에 자고 밤에 정처없이 인근 공원을 돌아다니는 등 밤낮이 바뀐 상황이 계속 되었다. 수입이 크게 줄면서, 주민세도 밀리고 거품경제 말기에 1억 5000만엔에 구입한 아파트의 대출금 상환도 밀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인 카누마 에리도 원래 배우였었다는 자존심을 버리고 인근 스낵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빚을 갚으려고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부채는 3억엔까지 늘었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친아버지의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후루오야의 계모와 싸우게 된다. 후루오야는 원래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손을 씻을 정도로 결벽증 있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배우로서의 활동에 제동이 걸린데다 빚도 갚지 못해 빚 독촉을 받는 등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쌓인데다 밤낮이 바뀐 황폐한 생활 때문에 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한다. 아내 카누마 에리와 말다툼 하면서는 아내의 얼굴에 중상을 입힐 정도의 폭력을 행사해 아내 카누마 에리는 남편이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울러 그와 반대로 후루오야가 '무대에서 죽는 것이 배우로서 숙원'이라거나 '자신은 필요없는 사람이 아닌가'하는 비관적인 말을 진지하게 하는 등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후루오야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버지가 남긴 거액의 유산이 최후의 보루였다. 아버지의 후처인 계모는 후루오야와 나이가 불과 몇살 차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타계 이후 후루오야가 빚을 갚기위해 상속에 관해 알아보던 중 아버지의 현금과 부동산 등이 모두 계모 명의로 이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후루오야가 계모에게 재산분할을 요구하였으나 계모는 거절, 언쟁이 불거졌고 계모와 재산을 둘러싼 소송을 벌이던 중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다는 것이 카누마 에리의 의견이었다. 이 과정에서 죽은 후루오야 마사토의 아버지도 비판을 받았다. 후루오야 마사토가 1957년생인데 계모도 언론에 따르면 1950년 이후 생으로 최대한 많게봐도 후루오야보다 6살 정도 많다. 후루오야의 아버지는 후처와 나이가 3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도 결혼을 했고 결국 후처로 인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전처(후루오야의 친모)가 죽은지 얼마되지 않아 재혼을 감행하여 이를 반대한 아들 후루오야와 의절하게 된다. 부자가 서로 소원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죽는 과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계모가 남편의 재산을 자기 맘대로 자신에게 이전하는 등 사문서위조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후루오야의 자살 당시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타살 의혹이 제기 되기도했다. 이유는 소송 과정 중 계모가 남편 사후 자신의 명의로 이전을 한 과정에서 사문서 위조 정황이 드러나는 등 상황이 후루오야에게 매우 유리했음에도 갑작스럽게 자살했기때문이다. 후루오야의 아버지는 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혼을 했기때문에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아들인 후루오야에게 재산의 대부분을 물려주려고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런데 그 유언장을 계모가 위조한 게 드러나 계모가 사문서 위조로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살이 아니라 계모가 후루오야를 죽인 후 자살로 위장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후루오야의 시신부검에도 별다른 타살정황이 드러나지 않아서 자살로 발표되었고 후루오야의 유족도 이를 받아들였다. 후루오야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유족들이 후루오야 마사토의 소송을 계승하여 계모가 감옥에 수감된 상황에서 소송을 진행하였다. 결국 후루오야 아버지의 유산을 후루오야 유족에게 상환하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계모가 빼돌린 유산은 계모의 본가에서 관리하고 있었고 이들은 불복한다고 했으나 재판에서 패소하고 후루오야의 유족들이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하여 유산은 후루오야의 유족들에게 돌아갔고, 유족들은 빚 상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문서 위조를 해서 재산을 차지했던 계모는 유산을 되돌려줘야 했을뿐만 아니라 감옥에 수감되어 응분의 처벌을 받게되었다. 후에 밝혀진 바로는 계모의 사문서위조에는 계모의 남동생과 두명의 여동생과 부모 등 계모의 일가 전체가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이들도 일본 경찰의 조사를 받아 검찰에 기소되었고, 유죄가 확정된다. 후후로야 계모의 부모는 노환인데다 주범은 후루오야의 계모와 그녀의 남동생과 여동생이라는 이유로 보석으로 풀려났고 여동생 한명은 미성년자의 신분이라 제외되고 후로오야의 계모의 남동생과 여동생은 기소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후 각 신문사와 뉴스매체, 황색언론 등에서 후루오야의 계모와 그녀의 부모와 남동생과 여동생들의 신상을 공개하여 연이어 보도했다. 기소되지 않은 계모의 여동생의 신상이 보도된 것은 미성년자이기는 하지만 일본 경찰의 언론 브리핑에 의하면 당시의 전화통화 및 이메일, 메신저 내역을 보면 막내 여동생도 사전에 사문서위조 계획을 알았을 것으로 판단하지만 미성년자라서 구속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후 주간문춘에서 감옥에 수감되지 않은 후루오야의 계모의 부모와 구속되지 않은 막내 여동생에 대해서 취재했는데, 신상이 공개된 이후 계모의 부모는 재산을 처분해 어딘가로 이사했으며 후루오야의 계모의 막내 여동생은 다니던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할 것을 우려한다며 학교 측에 자퇴를 신청해 자퇴를 했다고 하며 이들이 이주한 장소는 불명이라고 보도했다. 후로오야 일가의 돈을 노리고 후루오야의 계모와 그 가족이 모두 후루오야 일가의 재산 탈취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고 신상이 모두 밝혀져 이들도 응분의 죄를 톡톡히 받게 되었다. 그의 자살 이후 10주기가 되는 2011년 추모식이 열리기도 했다. 이후에는 아들인 후루오야 마사토(古尾谷雅)가 자신의 예명 후루오야 마사토(古尾谷雅人)를 계승하여 2대 후루오야 마사토가 됨에 따라 후루오야는 1대 후루오야 마사토가 되었다. 카누마 에리에 의하면 [[비밀전대 고레인저]]에서 55화부터 67화까지 2대 키레인저 [[쿠마노 다이고로]]로 출연한 다루마 지로가 자신과 친분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후루오야 마사토와 알게되었다고 한다. 다루마 지로는 37살이던 1988년에 배우활동을 그만두고 필리핀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나름대로 유명한 배우였던 후루오야가 자살한 이후에 고인 관련 언급되는 연예계 인맥이란 것이 현역은 거의 없고 한참전에 은퇴한 다루마 지로 정도만 언급될 정도로 후루오야는 대인관계에 서툴렀다고 한다. 참으로 씁쓸한 부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